Yokoyama.side
"요코 듣고 웃지마."
"응?"
"...내가 미안해."
그때부터였다. 어린 마음 한구석에 네가 싹트기 시작한 건.
쿡쿡 웃음이 비집고 나오는 걸 막을 수 없어 손등으로 입가를 가리자, 웃지 말라고 했잖아! 하며 양볼을 붉힌 채. 그럼에도 내 눈을 곧게 바라보는 네가 서 있었다.
시커먼 남자애가 뭐 좋다고. 그렇게 고개를 돌려봐도 자꾸만 물들어가는 제 심장을 꺼내기엔 어느새 애정이라는 붉은 심해에 빠져 건질 수가 없었다.
세상에서 두 번째로 예쁜 눈. 사실은 첫 번째인 거 같은데, 제 안의 심술쟁이 마음이 불쑥 먼저 나와버렸다. 첫 번째는 토이푸들이야. 히나는 두 번째.
네가 처음이 되지 않도록 내 마음속 깊은 곳에 자물쇠를 채웠다. 절대 밖으로 나가면 안 돼. 아무도 모르도록,
"요코, 네가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어."
그때, 그 어릴 때. 너는 사회를 보면 어떻겠냐는 말을 하지 않았으면 어떻게 됐을까.
그럼 너는 여전히 긍정적이고 조금은 귀엽고 어딘가 순진한 듯한 모습으로 나를 의지해 주었을까. 여전히 히나쨩으로 있어 주었을까.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는 자신의 입안이 썼다.
"이대로 할아버지가 될 때까지 아무것도 안 변할 줄 알았어."
그런 줄만 알았다.
영원이 없는 세상에서, 영원을 지키기 위해 발버둥 쳤다.
히나도 계속 히나일 거라 생각했는데, 이제 더 이상 입 밖으로 뱉어지지가 않았다.
모두가 어른이 되어가고, 변해가고. 나만 홀로 멈춰, 다리에 무거운 족쇄가 채워진 듯했다. 나를 두고 가지 말아줘. 옆에 있어줘.
그 말을 꺼내면 더욱 멀어질까봐. 두려웠다. 오래된 감정이 쓰나미처럼 덮쳐와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보고싶어.
빈 방을 울리는 한마디에 오늘도 너를 그리며 눈을 감았다.
그날 밤에도 어김없이 그가 나왔다.
무라카미 싱고는 이상했다. 그건 뭐 만났을 때부터 계속. 내 전용 입술이라는 둥, 제 옆집으로 이사 오질 않나. 하루는 내 마음을 아는 건가 싶어 혼자 발을 동동거리기도 했지만 역시나 그럴리는 없지. 여튼 무라카미는 사람 속 터지는 짓은 골라서 했다.
친구인 척. 평범하게.
그러나 아침저녁으로 보이는 그 문패 너머로 들어가 버린 꿈을 꾸었을 때는 이제 저도 제가 무서웠다.
견딜 수 없어 이사하던 날, 우연히 퇴근하고 들어오는 너와 마주쳤을 때. 말을 걸어오는 너에게서 도망치듯 몸을 숨기고 문을 닫았다. 등 뒤로 똑똑- 노크소리가 날까 심장이 펌프질을 해댔다. 조금의 발걸음 소리. 열쇠가 찰랑이는 소리. 문이 열리고. 닫히고.
마음속에서 무언가 이름 없는 실 하나가 똑- 하니 끊어졌다. 마치 제 다리를 지탱하던 실이었던 마냥 그대로 힘이 풀렸다.
태아처럼 동그랗게 만 몸을 따라 볼을 타고 무언가가 흘러내렸다. 이대로 마음까지 녹아내렸으면.
편안한 적막 속에서, 무라카미의 시선은 여전히 책을 향한 채였다. 강산이 두 번이나 변할 동안 언제나 지켜봤던 그 옆얼굴. 제목도 읽지 못할 망할 책 따위에 질투하는 저를 깨닫고 작게 한숨이 나왔다. 끝이 없는 동굴 속에서 출구는 있는 걸까.
한숨소리를 들었는지 고개를 드는 너를 피해 시선을 돌렸다. 아직도, 나는 너의 시선이 부끄러웠다.
검은 눈동자가 내 마음을 꿰뚫어 볼 것 같아서.
너는 영원히 알아서는 안 될 내 저주받은 마음.
그룹 내 연애 금지. 제 친구는 저를 알고 말한 거였을까. 이미 떠나버린 주제에. 이제 저주를 풀어줄 사람도 없잖아.
눈 딱 감고 말해버리면 편해지지 않을까.
그러나.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빛나는 그를 잡을 용기가 없었다. 더 멀리 올라갈 그를 붙잡을 수 없었다. 입 밖으로 내는 순간 그곳은 하염없이 밑으로 밑으로 떨어지는 검은 구렁텅이일 뿐이었다.
정신 차리고 보니 옷장도 무엇도 제 주변은 죄다 검은색이 되었다. 나는 이미 검은 구렁텅이 속에 있어서 그런 걸까?
"요코는 검정이지?"
그게 누구 때문인데.
제 검은 속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싱글벙글이었다. 바보. 멍청이. 나쁜놈.
그래도 좋아해.
출구조차 없는 지독한 사랑,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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